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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비의 러시아 유학기

[러시아에서 석사 따기] Prologue. 러시아, 또 너니?

러시아와 나의 인연은 이제 어언 10년이다. 대학에서 러시아어를 전공하면서부터니까 말이다. 알파벳조차 쓸 줄 몰랐던 외계어가 이제 내 생계를 책임져주고 나의 진로방향을 결정한다는 사실이 치사하면서도 대견하다.

 

나의 러시아 실력이 본격적으로 늘기 시작했던 시기는 학부 3학년 때 교환학생을 다녀왔을 때이다. 한국에서 2년 넘게 문법과 회화를 배웠건만 지지리도 늘지 않던 이 외계어는 내가 그 나라에 가서 직접 몸으로 부딪히고서야 제 모습을 보여주었더랬다. 못됐어. 

 

러시아 교환학생을 2015-2016년에 다녀오고 학교를 졸업하고 나의 불완전한 러시아어로 첫 취업을 했다. 당시 4학년 때 아르바이트하던 뿌쉬낀하우스에서 만난 선생님이 제안해 주신 일자리였다.

 

새로 만들어지는 회사인데 러시아 연주자들을 한국으로 초청해서 공연을 주최하는 공연 기획사였다. 문화에도 꽤나 관심 있었고 아르바이트하면서 그 선생님에게 (좋게) 찍힌 나는 약 1년 10개월 간 회사에 몸담으며 러시아와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사실 꿈이 있었다. 국제 개발협력 분야에서 커리어를 쌓아가고 싶다는 꿈이었다. 당시 나의 짧은 지식으로 국제 개발협력 분야에서 일하려면 지원 자격부터 '국제 관계', '국제 개발', '개발 협력' 처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학위이거나 또는 '환경', '교육'과 같은 구체적인 분야가 있는 학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지원 자격으로 명시되어 있는 기관들도 있지만, 무조건적인 지원 자격은 사실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누가 봐도 국제개발협력 관련 경력 및 학위가 1도 없는 사람이었고 이때부터 나는 지원 자격부터 맞춰야겠다 다짐했었던 것 같다. 

 

회사를 다니며 코이카 (KOICA)가 주최하는 ODA 일반 자격증을 공부했고 2016년에 자격증을 딸 수 있었다. 자격증이 있으니 이제 내가 할 일은 학위를 갱신하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학사를 딸 생각은 전혀 없었고 나에게 있는 옵션은 석사 하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많은 조건을 전제로 했다.

 

1. 국제협력 관련 학위여야 할 것. 2. 내 돈으로 학비를 마련해야 할 것. 3. 러시아어를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 

 

이 시기 나는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이 세 가지를 모두 만족시키는 것은 러시아에서 국제관계학이나 국제개발학을 전공하는 것이었는데. 요건은 학비를 어떻게 마련하느냐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돈이 나올 구석은 내 바짓주머니가 아니라 학교나 정부라고 생각했다.

 

나는 매년 1-2월 선발하는 러시아정부초청장학생 제도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교환학생 당시 이 제도로 학교를 다니고 있는 친구들이 몇몇 있었기 때문이다. 나라고 못할게 뭔가. 안 돼도 밑져야 본전이니, 지원은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2019년 1월에 '러시아 정부초청 장학생 제도'에 지원했다. 러시아는 국제관계학으로는 강국이지만, 국제개발학으로는 아직 한창 연구하는 단계에 있는 국가다. 그래서 개발학을 공부하려면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몇개의 정해진 대학을 갔어야 했다. 총 6개의 학교를 지망할 수 있고, 한 지역당 2개의 학교에 지원을 할 수 있었다.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1 지망은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국제관계학과였고, 2 지망은 상트페테르부르크 고등경제대학교 국제개발학 그리고 3 지망이 극동연방대학교 국제관계학과 4 지망부터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톨스토이가 나왔다던 카잔대학교도 있었던 것 같다. 

 

이들 학교 중 러시아 정부에서 나에게 매칭시켜준 학교는 3 지망이었던 극동연방대학교였다. 내가 교환학생으로 1년간 몸 담았던 학교이자, 푸르른 바다가 펼쳐져 있는 섬 위의 학교였다. 사실 지원한 학교 중 제일 안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던 게 극동연방대학교였다. 왜냐하면 이미 가봤던 학교였고, 나는 더 큰 도시로 가서 공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늘은 나에게 극동연방대학교로 가라고 했고, 나는 순응했다. '더 좋은 길로 인도해주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2019년 9월, 나는 다시 러시아 땅으로 향했다. 단돈 500만원과 함께.